현대미술과 모더니즘

모더니즘을 어떠한 영역으로 나눈다면 나는 미술 안에서 나뉘어 이야기해보고 싶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너니즘, 그 것의 역사. 포스트모더니즘을 현대미술과 분리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선 모더니즘 미술을 알아봐야 할 것이다. 우선 고전의 미술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자. 고대 그리스 조각들은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그렇게 모더니즘의 미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비너스의 몸과 쥴리앙의 조각은 그것이 개인의 주체성과는 어떻게 연관이 지어지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비너스의 조각가의 이름을 모른다! 어찌되었든 그것은 역사적 자료와 대중매체의 발명의 기술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것은 고전의 미술들이 오늘날의 미술을 만드는 밑거름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모더니즘의 미술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자. 모더니즘을 알기위해 빼 놓을 수 없는 장르는 인상주의이다. 로코코와 바로크 미술 등이 세상의 미술을 사로잡고 있을 시대를 넘어 새로운 미술의 기운이 생기게 한 절대적인 주의인 인상주의는 그렇게 작가 자신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미술의 자율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등장한 많은 화가들- 우리가 흔히 아는 모네, 마네, 쇠라, 세잔, 고흐 등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 화가들의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어떤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그것에서 우리는 모더니즘 미술의 벽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등장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상주의적 모더니즘은 어떻게 변모했는 가. 그것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에는 두명의 인물이 중요한 자리를 매김하고 있었다.
 피카소와 뒤샹. 우리는 현대미술을 논하기 위해 이 두사람을 빼놓을 수가 없다. 피카소가 회화에서 혁명을 일으켰다면, 뒤샹은 개념에서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를 그렸을 무렵의 충격은 가희 놀라웠다. 그의 나이 27살인데 미술사를 바꿀 만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은 일이다. 입체주의 발현으로 보아도 무관한 그 그림은 입방체로 나뉘어진 배경과 아프리카 원주민의 가면을 닮은 얼굴을 한 나부들의 그림이었다. 그것은 공간을 입방체로 보고 앞과 뒤 옆의 모습을 한 화면에 넣으려 했던 그야말로 입체주의적 혁명이었다. 회화의 혁명이자 현대미술의 시작의 축포였다. 그렇다면 뒤샹을 보자. 뒤샹은 셈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변기를 그대로 전시장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기성품이 그대로 예술이 될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은 현대미술의 개념의 시작과도 같았다. 그가 많은 30여점의 레디메이드들은 그야말로 소중히 간직되어야할 걸작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걸작이라는 단어가 과연 현대미술에 어울일까도 생각해봐야한다. 모더니즘이 미술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작가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말 그대로 그것에서 벗어나는 운동이었다. 부르주아들만이 향유한 예술에서 벗어나서, 대중과 고급미술의 경계를 허물기로 한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걸작이라는 도도한 용어는 사용하기를 꺼려해야만 한다. 혼성모방, 개념주의, 기표주의, 내용주의, 패러디, 차용하기 등의 특징을 드러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양한 영역의 특성을 가지는 미술의 형태를 제공함과 동시게 자기분열적 특성을 보이면서 오히려 대중과 멀어지는 계기가 생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입체주의 이후로 발동한 다다이즘, 미래주의, 앙포르멜 운동, 개념미술, 미니멀 아트, 팝아트 등은 포스트 모던 미술과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흐름이었다. 신표현주의를 통해 포스트모던 미술이 대대적으로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통해 그 변모를 잘 엿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리히터는 모더니즘의 시대를 살면서도 동독과 서독이라는 경계를 넘나들어 자신의 독자적인 미술을 만들어낸 인 물이다. 그의 작품이 포스트모던할 수 있으면서도 혁명적인 회화를 만든 것은 그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도입했다는 부분에서 큰 이유를 찾아볼 수가 있다. 회화의 위기를 발생시킨 사진이라는 매체를 역이용하여 회화를 포스트모던 미술안에서 부활시킨 것이다. 예를 들면 아마추어 작가의 사진을 사용하여 그것을 회화로 그대로 옮긴 뒤에 그것을 수년뒤 다시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회화가 가지는 새로운 가능성을 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의 주체성과 권위성이 아마추어 사진을 통해 떨어져 대중과 고급미술의 경계를 허뭄과 동시에 포스트 모던적 특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평하는 계기가 된다. 그의 이런 일련의 행위는 혁명적이면서도, 어떤 이즘과 경계에 머물지 않는 그의 생각을 드러낸다고 할 수가 있다. 그것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행되는 와중에 나타는 역사를 한 작가의 작업 성향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는 위대한 어떤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그의 아틀라스 전시에서도 수많은 사진들만을 전시 한다든가 색상표를 사용하여 작품을 전시한다는 등의 행위는 우리가 어떻게 이 한 작가가 주목받지 않을 수 없냐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그것은 그의 경계허물기의 특징이자, 포스트모더니즘 안에서의 한 '화가'가 지위를 잡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기의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물기에서, 사진을 통해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물기, 회화 안에서 고정된 관념을 허물기 등은 벗어나기라는 이념아닌 이념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사는 현 주소의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가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 고대 미술에서 시작된 미술사에서부터 인상주의를 필두로 하는 모더니즘의 미술까지, 그리고 현대미술의 태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술에 관해 알기위한 리히터 작품 분석까지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미술의 역사가 이렇듯 다이나믹하면 매력적이라는 것을 .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현대미술을 이해하기까지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경계사이에 서있고, 그 경계를 이해하기 위해 경계를 넘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by 김호찬 | 2010/01/19 22:43 | 트랙백 | 덧글(0)

상상 속의 현실

조금 특이한 생각을 해봤는데 생각해보니 영화 매트릭스의 개념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과 연관이 있으면서도 약간 특이한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이 과연 실재인가에 대해 매트릭스 영화에서는 철학적 물음들을 던진다. 철학사를 통틀어 여러가지 철학적 비유들을 이용한 이 영화에서 주체가 보는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던져준다. 그것은 보드리야르의 이론인 가상의 세계가 실재의 세계를 대체한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틀린 부분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생각은 이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하나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런데 이것은 각자의 시뮬레이션이다.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다. 절대 묶여져 있지 않다. 각자는 각자의 시뮬레이션 안에 즉, 개인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 세계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 한 60억개 정도. 즉 사람의 수많큼 각자의 시뮬레이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루는 것은 아마 신이겠지만. 혹은 신이 아니라 그냥 돌아가는 시뮬레이션'들'일지 모른다. 그 시뮬레이션들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각자의 프로그램을 돌리지만 다른 시뮬레이션들과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돌아간다. 여기서 매트릭스와 많이 비슷해보일지는 모르지만 틀린 부분이라면, 각자의 시뮬레이션이란 것은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다. 즉, 전체 소위 영화에서처럼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 안에서 각자의 의식이 프로그램화되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프로그램들 60억개가 돌아가면서 서로 연관이 지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즉 각자는 철저히 혼자만의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곁에 있지 않다. 그것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이는 일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서로가 같이 있다고 느끼게끔 프로그램되어져 있다.

 이것을 개인주의적 성향의 극단이라고 부르자. 그러한 형식으로 세계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주의의 극단의 모습이 아닐까? 이미 개인주의 자체가 세상의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상상 속의 현실이다. 생각해본 정도 이지만, 그 무섭기는 매트릭스의 그것보다는 몇 배 무서운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왜냐면, 매트릭스에서는 시온이라는 진짜 현실을 가정해 놓았기에 그나마 인정이 발생할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극단의 개인주의적인 현실의 세계. 그것이 내가 한 상상이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살고 있을지 누가 알까?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미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게 되어진 것은 아닐까? 내가 이런 상상을 한 것은 어쩌면 현실이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상해보자. 그것은 현실이다.

by 김호찬 | 2009/11/12 02:02 | 트랙백 | 덧글(0)

가변적 정체성

  서도호 작품 중에서 천을 이용하여 집을 만든 작품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한국에 살때의 집이고 하나는 미국에 이주해 오면서 살게 된 집이다. 둘은 다른 듯하면서 같고, 같은 듯 하면서 다르다. 둘 다 천이라는 질감의 느낌을 낸 듯 한데, 둘은 서도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집을 바꿔오면서 바뀌어진 공간의 변화는 그에게 정체성의 변화까지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천으로 된 집은 들고 다닐 수 있게 되고, 들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곳에 언제나 존재하지 않고, 어디로든 옮길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서도호의 집이며 공간이며 정체성이다. 

by 김호찬 | 2009/10/09 00:59 | 트랙백 | 덧글(0)

내 머리 속의 미술사


미술사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꽤나 많이 읽었고, 보았고, 관심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두서가 없는 부분인 확실히 있지만 내가 아는 미술사를 보면서 나름대로 구석구석 읽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아는 미술사를 적어보려한다.


 사실 인상주의부터 좀 자세히 관심을 가져와서 그 전의 미술사는 기본적인 지식 뿐이다. 예를 들어 알타미라 벽화와 같은 미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그림들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쯤. 그리고 훌적 뛰어서 로마 그리스 미술로 간다.; 그 당시 미술은 조각상들 - 유명한 - 으로 기억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미술사. 여기에서는 조금 읽어보았는데, 미켈란 젤로의 피에타와 천지창조와 같은 대작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라파엘로의 성모자상 등이 유명하다. 인문주의의 발달로 시작된 이 르네상스는 획기적인 예술의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그리고 훌쩍 뛰어서 인상주의로 가자. ;; 내가 볼 때 인상 주의 이전의 미술사는 하나의 표현의 역사였다고 본다. 사실적인 표현, 보이는 것의 표현. 사실적 묘사와 원근법, 어떻게 보이는 것을 그리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인상주의 이후의 것이 그것의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도 없으나, 그러한 표현을 해 온 시기라고 본다. 즉 내용에서는 그저 단순히 신화나 성서를 재현하는 혹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정도였다고 본다. 그것은 조금은 내용<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인상주의부터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보자. 인상주의에서는 빛의 변화를 읽으려고 했다. 이것은 표현적으로 변화를 가져오게된 '생각'의 변화였다. 즉 내용>표현이 되는 전환점이랄까? 아직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인상주의에서는 모네가 했듯이 아침의 빛에 비친 사물을 그대로 그리고, 점심때의 빛, 그리고 해질 무렵의 빛을 그대로 그림으로써 표현의 큰 변혁을 가져온다. 인상, 즉 해질 무렵의 순간을 그려냄으로써 새로운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원근법, 사실적 묘사가 서서히 파괴되기 시작했다고 쉽게 말하겠다. 색이라는 것을 특히하게 포착했다고 보는데, 쇠라의 점묘화를 보면 그 색의 묘사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의 그림은 허벅지의 어두워지는 부분의 색이 그렇게나 많을 수 있음을 말해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드가- 무용수의 모습을 포착하여 그림-와 같이 색을 다양하게 썼던 그림에서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상주의의 표현은 후기 인상주의에 가서 새로운 길을 모색케한다. 고흐의 끊어진 색줄을 보면 거기에 얼마나 다양한 색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들은 세잔에 가면서 생각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세잔이 여러 시점에서 사물을 그림으로 인해 새로운 표현법을 얻게 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생각의 변화가 표현을 달리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표현의 변화는 서서히 내용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현대미술의 시작을 예고한다.

 인상주의는 그렇게 미술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표현이 내용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 전환점을 크게 본다.

 후기인상주의의 영향으로 큐비즘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세잔의 다시점에 의한 표현법은 피카소에 의해 입체주의라는 미술사의 획을 긋는 역사적 혁명으로 이어진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현대미술의 시발점으로 미술사가들은 평한다. 아프리카 가면을 쓰고 있는 여인들의 형상은 왼쪽에서 보고, 오른쪽에서 보고, 정면에서 본 뒤에 다시 그것을 합쳐놓은 듯하다. 그렇게 표현은 특이하게 나오고 미술사는 변하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특이한 인물로 뒤샹이 있다. 셈이라는 작품으로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려도 되지 않을까? (피카소는 어머니쯤?)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을 그대로 이용하여 예술 작품화시키는 것-을 만든 그의 정신은 오늘에도 여전히 통한다. 후기인상주의에서 나온 피카소의 큐비즘과 뒤샹의 레디메이드적 개념들은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마티스의 포비즘을 비롯하여, 미래주의, 절대주의, 추상회화, 추상 표현주의, 미니멀아트에서 개념미술까지 이어진다. 그것들은 모더니즘적인 색채를 띠면서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세세한 것은 모두 적지 않겠다.

 현대미술의 중요한 사조로 팝아트를 들 수가 있겠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붕괴시키는 그 사조의 역할을 대단한 것이었고,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전조가 되었다. 앤디워홀의 팝아트는 대중에게 다가갔고,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또한 만화의 차용으로 포스트모던적 성향을 띠게 된다. 그리고 포스트 모던이 대두되면서 미술사는 현대미술판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모더니즘적 미술 또한 함께 한다. 그러한 성향 자체가 아마 포스트모던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포스트모던이란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개념이라 생각된다.

by 김호찬 | 2009/09/28 19:49 | 트랙백 | 덧글(0)

게르하르트 리히터

 사진의 활용을 이용한 그의 극사실적 작품들은 그의 개념에서 연유된다. 그의 생각은 모더니즘의 사고에 머물러 있던 회화의 문제점을 어떻게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이겨내는가였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개발은 회화의 영역에 큰 위협을 주었고, 모더니즘 미술의 태동을 알렸다. 추상적 이미지를 비롯해, 예술을 위한 예술은 그렇게 천재주의적 미술로 발전을 시켰고, 거기에 반발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태어나게 된다. 그 안에서 이루어진 리히터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시 사용하면서 모더니즘적 미술의 문제를 이겨내는 것이었다. 일반일들이 찍은 -즉 아마추어 사진-을 그대로 작업의 매체로 사용함으로써 고급예술 속에 대중의 이미지를 적용시킬 수 있게 되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그럼으로 인해 나타난 그의 작업은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을 띄게 된다. 그리고 그 사진을 그림으로 재현하면서 현대미술 속에서의 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게 되고, 포스트모던적 의미를 더한다. 그의 그림은 물질성을 제거한 반질한 표면 위에 사진을 재현하여 그 또한 그러한 성향을 띠게 된다. 그것은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이며, 포스트 모던 안에서의 회화의 발견이다. 

그는 철학자와 성직자가 군림하던 세상은 이제 예술가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고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 안에서의 현대미술의 개념적 중요성을 알 수 있게 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by 김호찬 | 2009/09/23 00:3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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